2022년 12월

정윤영 기록

있을 수 없는 일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올해로 보험설계 8년차 강미선씨의 일이다. 그는 한화 생명 별내 지점 3팀 팀장으로, 팀장이 된 지 4년째다. 팀장이 되기는 쉽지 않다. 조건이 꽤 까다롭기 때문이다. 팀원으로 일하면서 팀장에서 리쿠르팅(인재 채용활동, 보험업계는 팀장들이 신인 보험설계사를 직접 유치해 조직을 운영한다.) 하는 법과 고객에게 상품을 설명하는 법 등을 오랜 기간 배운다. 강팀장의 3팀은 팀원 10명이 있는 작지 않은 팀이고 팀장은 3년 연속 에이스를 할 만큼 '성적이 나쁘지 않은'팀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건 2022년 7월, 별내 지점에서 리쿠르팅에 유일하게 강팀장만 성공한 달이었다. 신입 FP 등록을 앞둔 마지막 날, 등록을 거부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점장은 신입이 접수한 고객 계약건을 승인할 수 없다며 계약을 거절했고 자동적으로 신입 등록도 진행 되지 않았다. 신입 등록을, 게다가 보험 계약건을 지점에서 거절하는 일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다. 등록을 기대한 FP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전달해야할지 막막했고 같이 일해 온 지점장의 태도가 당혹스럽기만 했다. 지점장에게 '지금 일하지 말라는 거냐'고 쏘아붙일 만큼 화가 컸다.

그래도 다음 달에는 등록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계약을 두 번 거절한다는 게 말이 안 됐다. 8월 첫날 출근하자마자 그는 단장과 면담을 요청했다. 신입 등록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단장은 '심각한 문제 아닌 것 같다'며 자신이 중재한다고 했고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에 강팀장은 마음이 조금 놓였다. 단장을 만난 게 문제가 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강팀장과 신입이 단장의 말만 믿고 기다린 시간은 20일이 다 되었다. 중재를 해준다던 단장도 FP를 관리하는 지점장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월말이 되어 급여 명세서가 나올 때가 되어서야 지점장은 신입을 불렀다. 문제가 생기고 처음으로 지점장이 건넨 말은 '출근 안 할 줄 알았는데 출근해서 당황했다'는 말이었다. 강팀장은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나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급여 명세표 나오면 깜짝 놀랄까봐 불렀다면서 천진난만하게 출근했다는 말에 신입이 충격을 받았어요. 회사에 안 나오길 바랐다는 얘기잖아요. 그동안 저한테는 어떤 말도 안 하다가 일을 하려고 온 사람한테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곧바로 단장님한테 미팅 하자고 요청을 했어요."

단장과 두 번째 미팅을 약속하고 출근한 다음 날, 사무실이 소란스러웠다. 조회 시간에 조만간 대대적인 조직 개편이 있을 거라는 지점장의 말 때문이었다. 누구라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강팀장은 '느낌상 우리일 것 같았다'. 팀장은 느낌이었지만 다른 팀장과 팀원들은 강팀장의 3팀과 첫 단장 면담 때 같이 갔던 6팀을 '없앨 거'라는 얘기를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그 말을 전한 건 별내 지점의 1팀 팀장이자 수석 팀장이었다.

두 번째 미팅에서 단장은 조직 개편과 관련해 들은 바가 없다고 했다. 강팀장은 팀이 폐쇄되거나 팀장이 해임될 수 있는지 거듭 물었다. 단장은 해임과 관련해 공문도 없었고 지점장이 공문을 올린다 한들 자신이 이유도 없이 승인해주겠냐고 못을 박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지점장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면서 지점장과 대화를 해보라고 덧붙였다. 중재하겠다는 약속은 20일 만에 사라지고 지점장 편을 들 수밖에 없다는 단장 말에, 강팀장은 '진짜 좌절했'고 공문이 없었다는 말도 믿기가 어려웠다. 그 좌절감에 강팀장은 몇 년 전 있었던 비슷한 일이 떠올랐다. 달라진 게 있다면 노조가 생겼다며 그는 말을 이었다.

"3, 4년 전에 비슷한 일이 있어서 팀장 둘이 나갔거든요.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 이해가 돼요. 이제 저한테 그런 일이 생기니까 너무 억울했어요. 이대로라면 결국 내가 나가는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이 드는데 솔직히 너무 억울하고 분한 거예요. 그런데 그때는 노조라는 게 없었잖아요.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면서 통화해보라고 전화번호를 알려주셨어요. 바로 지회장님이랑 통화를 하고 다음 날 상담 받기로 하고 끊었어요."

다음날 출근해보니 책상이 사라졌다.

8년간 일하면서 쌓아두었던 짐들이 사무실 밖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책상은 다른 자리에 놓여 있었다. 단장이 모른다던 팀장 해임이 사실이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지점장에게 찾아가 '(팀장 해임)공문 언제부터냐'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지점장은 '9월 1일'이라고 짧게 답했다. 9월까지는 아직 남았는데 왜 치웠냐고 다시 물었다. 지점장이 자기를 모른다고 고개를 돌리자 수석 팀장이 자기가 치웠다며 대신 답했다. 책상을 왜 치웠냐고 묻자, 수석 팀장은 '네가 지점 얼굴에 똥칠하고 다닌다'며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팀장은 크게 '노조! 노조!' 하며 소리를 쳤다.

노조 사무실에 연락해 상담을 했다는 이유로 책상을 없앤 걸 보고 강팀장은 해임이 현실이 되었음을 확인했다. 이튿날 노조 지회장이 별내 지점을 방문했다. 지점장은 지점장과 불화가 해임 사유라며 '정당한 사유'라고 했다. 강팀장이 단장을 찾아가 '지점장을 갈아치워달라'고 했다는 게 불화의 이유였다. 그러면서도 '팀장 해임은 기준이 없고 지점장과 단장 재량껏 할 수 있다'고 얼버무렸다. 신입 등록 거부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팀장 해임은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신입 FP 등록을 위해 단장과 면담을 한 게 해임사유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강팀장은 9월 1일로 해임되었고 함께 면담했던 6팀의 팀장도 함께 해임되었다.

팀장이 해임되자 팀원들은 난리가 났다. 곧바로 지점장을 찾아가 해임 사유가 정당하다면 관련 서류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지점장은 '지극히 감정적인 거 인정하겠다'며 해임 관련 서류는 없다고 했다가, 보안상 이유로 줄 수 없다고 말을 바꿨다. 이번엔 단장을 찾아갔다. '지점장을 갈아치워달라'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해임이 맞냐고 물었다. '지점장이 그렇게 느꼈겠지.' 답했다. 강팀장은 감정적인 이유로 해임할 수 있는 거냐고 다시 물었다. 단장은 '노조에 이용당하지 말라' 할 뿐 답이 없었다.

강팀장은 노동조합과 함께 '지극히 감정적인 해고'에 부당해고 철회를 위한 피케팅과 집회를 시작하고, 본사에 부당해고 건으로 감사를 요청했다. 감사 면담에서 관리자는 '진짜 개판'이라면서도 '회사도 여왕은 못 건드린다.', '노조에 이용당하고 버려질 것'이라고 했다. 감사 결과는 뻔했다. '규율적으로 문제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해고 3개월 째, 본사는 여전히 묵묵부답, 원직 복직은 불가하다는 답만 반복하고 있다. 해고된 팀장과 팀원들은 별내와 여의도를 오가며 피켓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누군가 피켓을 없애버리면 다시 만들고, 문구를 떼면 다시 붙여가면서, 영업 방해와 손해 배상, 윤리규칙 활동 위배로 내용 증명을 받아가면서.

▲매일 점심시간, 여의도 63스퀘어 앞에는 부당해고 철회와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조합원들의 시위가 있다.

'시위하는 마음'은 당사자만이 알 것이다. 소형 앰프에서 들리는 팀장의 목소리와 몇 명 되지 않는 조합원들 구호에도 사람들은

귀를 막고 미간을 찡그리며 지나간다.바로 옆에서는 소음측정기를 설치하겠다며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무리가 있다.

무관심한 눈빛과 흘겨보는 시선 사이에, 슬쩍 또는 유심히 피켓에 적힌 문구를 들여다보고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

피켓을 들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고서는 못 배길 일들이 있다는 것을,

누구든 언제든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

여왕님을 위한 해고

별내 지점 6팀의 팀장 박미경은 단장 면담에 함께 간 게 시작이었다. 신입 등록 거부라는 초유의 사태에 '이게 우리 일이 될 수도 있다' 싶어 관련 규정을 알고 싶었고 '어려운 자리'인 만큼 함께 가야겠다 싶었다. 단장과 첫 면담은 떨렸지만,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중재하겠다는 단장의 말에 거듭 감사를 전했고, 소통이 잘 되는 직장이 뿌듯하기까지 했다. '중재의 시간'만 기쁘게 기다렸다.

중재 대신 들려온 소식은 조직 개편이었다. 조직 개편이 있을 거라는 말을 듣고 나니 어쩐지 그날따라 책상 위에 급여 명세서가 놓여 있던 게 떠올랐다. 평소 급여 명세서는 팀장이 가지고 있다가 팀원에게 개별적으로 나눠주는데, 이상하게 두 개 팀만 급여 명세서가 책상 위에 있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강팀장이 단장을 만나러 간다기에 같이 가야겠다 싶었다. 단장은 빨리 지점장을 만나라는 말만 반복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좌절감'이 심하게 들었다.

한 팀이 되어 일하는 팀장과 팀원을, 엄마-새끼라고 부른다. 엄마가 새끼를 돌보듯 보살펴주고, 또 새끼들은 엄마를 따르듯 일을 배우지 않으면 팀은 불가능하기에 생긴 말이다. 박팀장은 팀원으로 일하는 5년간 수석 팀장과 엄마-새끼 사이였고, 수석에게 '나의 오른팔'로 불렸다. 박팀장은 어떻게든 오해를 풀어야겠다 싶어 수석을 찾아갔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일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용서를 구했다. 자신과 3팀을 '없애 달라고 난리를 친' 사람이 수석 팀장이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다음 날 출근해보니 사무실은 난리가 난 뒤였다. 강미선 팀장의 책상과 짐이 복도에 나와 있었고 수석과 강팀장이 큰 소리를 내며 싸우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죄지은 듯 어쩔 줄 몰라 하는 팀원들을 보니 억장이 무너졌다.

한 개 팀에는 적게는 5명, 많게는 20명이 넘는 팀원이 있다. 각각의 팀들은 팀장의 재량으로 운영되며, 수익을 내는 구조 역시 팀마다 다르다. 박미경 팀장의 팀에는 고액 FP가 있다. 고액 FP는 고액의 보험료를 내는 고객이 있는 설계사를 말하는데, 고액 FP는 혼자 한 명이 한 개 팀의 업적을 할 만큼 성과를 낸다.

단장과의 면담 이전에 고액 FP인 A씨가 자리를 바꿔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이유는 사소했다. 현재 앉은 자리가 불편하다는 정말 별것 아닌 일이었고 지점장에게 얘기해 자리를 바꾸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박팀장은 앞선 단장 면담으로 지점장과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었지만, 별개라 생각했다. 지점장에게 A설계사의 자리를 좀 바꿔도 되겠냐고 묻자, 지점장은 의외의 답을 했다. 작게 조곤조곤 얘기하던 박팀장의 목소리가 커지고 빨라졌다.

"자리를 바꾸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니까 (팀원을) 해촉시키는 방법도 있고 팀을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는 거예요. 해촉도 말도 안 되지만, 팀 이동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 말이에요. 예민한 문제잖아요. 그래서 자리 바꾸는데 무슨 팀 이동이냐고 했더니 '여기 앉으려면 이 팀으로 가야죠' 하는 거예요. 너무 기가 막혔어요."

지점장이 말한 '이 팀'은 수석 팀장이 있는 1팀 자리였다. 수석은 그가 5년간 엄마라 부르던 팀장이었다. 전부터도 별내 지점의 지점장은 '1팀만의 지점장'이긴 했다. 수석은 여왕이라 불리는 에이스 설계사였고 30명 가까운 팀원이 있는 1등 팀의 팀장이었다. 지점장도 단장도 수석의 말이라면 '무조건 수용'해왔기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 최근 3년 간 코로나 탓인지 1팀이 전처럼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박미경 팀장은 '설마, 설마' 싶었다. 설마는 곧 현실이 되었다. '팀은 날려 버리고 팀장은 족쳐버리라'는 말이 나오는 걸 들었고 곧 팀은 '찢어지고' 팀장은 해임되었다. 그렇게 탐내던 고액 FP는 1팀으로 이동해 수석의 팀원이 되었다. 박팀장은 지점장과의 불화에 더해 '업적이 한 명에 편중된 건강하지 못한 팀'이라는 게 해고의 사유였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종이 한 장으로 팀을 날려요. 우리가 지점장 없애달라고 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는데, 우리는 누구의 생계를 어떻게 해달라고 함부로 말한 적이 없어요. 우리 직업이 땀에 젖도록 발로 뛰는 일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나는 우리 팀원이 사무실까지 오는 차비가 걱정돼요. 나는 해임하더라도 팀원들이 무슨 죄냐고 원상 복귀해달라고 했더니, 지점장 말이 그러겠대요. '대신 A는 빼고!' 하는 거예요. 눈물이 싹 가시더라고요. A를 1팀으로 보내려는 계획이냐고 했더니 노려보더라고요."

팀장을 해임하고 팀을 해체하는데 원칙과 기준은 없었다. 수석과 지점장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알 수 없으나 지점장 재량과 본사 승인으로 팀장 둘이 해임되었고, 고액 FP는 수석 팀장이 있는 1팀에 합류했다. 해고된 팀장 두 명이 매일 아침엔 별내, 점심 땐 여의도 본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부당함을 알릴 때, 수석 팀장의 1팀은 A 설계사 덕분에 3년간 부진했던 팀 업적이 급상승했다. '너무 빤히 보이는 그림'에 박팀장은 배신감이 컸다. 엄마-새끼였을 때 수석의 말이라면 무조건이었다. '부려 먹기로 유명'했지만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참을 수 있었다. 5년을 죽어지내고 나서야 '오른팔'이 될 수 있었다. 자신을 오른팔이라 부르던 엄마가 자신의 팀을 없애달라고 얘기했다는 말에 '소름끼쳐' 견딜 수가 없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때 노조를 만나지 않고, 싸우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는 인터뷰가 다 끝나갈 무렵이 되어 죽고 싶었다는 말을 어렵게 꺼냈다.

"정말 죽고 싶었거든요. 내가 왜 이런 말을 들어야하지 싶고 그냥 죽고 싶었어요. 정말 죽고 싶었어요. 자살예방 상담전화 그거를 보고 있더라고요. 강미선 팀장이 (노조) 지회장님 전화번호를 주더라고요. 노조를 몰랐다면 한화생명에서 조용히 사라졌을 것 같아요. 그래도 목소리를 내고 (억울함을) 얘기할 수 있도록 함께 싸워주니까 힘이 되죠."

어렵게 꺼낸 박팀장의 말을 강미선 팀장이 이어받았다.

"저도... 저도 생각했어요. 출근하기가 너무 싫은 거예요. 책상 없어지고 피켓 없어지는 일도 생기니까 트라우마처럼... 사무실 들어가려면 그냥 심장이 벌렁벌렁하는 거예요. 출근하면 또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서... 차라리 가는 길에 사고 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해할 수 없는 해고와 그 과정은 두 사람에게 트라우마와도 같은 상처를 남겼다. '트라우마처럼 남을 것' 같은 건 해고의 상처 때문만이 아니다. 정당한 복직 요구를 위한 투쟁이 '흙탕물 싸움'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 상처 안에 또 상처가 새겨지는 것 같았다. 한화생명은 두 사람이 '아이를 당당하게 키울 수 있게 해준 곳'이었고 '앞으로도 평생 일하고 싶은 곳'이었다. 지점장과 수석의 계속되는 비방, 본사의 무관심에 두 사람은 팀원들에 대한 미안함이 커졌고 팀장으로서의 자부심이 바닥으로 꺼지는 것 같았다. '이게 진짜 현실인가' 싶고 '수석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나쁜 건가?'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내 목숨이 파리 목숨'이라는 걸 깨달을 때마다 자신이 알던 세계가 무너져내리는 것 같다.

한 번의 해고와 한 번의 배신이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주황색 노조 조끼를 입고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쥐고 떨리는 목소리로 부당해고 철폐와 원직 복직을 외친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삶의 장면들이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조롱과 비아냥은 엄마라 부르던 사람, 한솥밥 먹던 지점장이라는 사실이 몸서리치게 아프다. 동시에 누군가 자신의 편에서 함께 원직 복직을 외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그 냉정한 시선과 따뜻한 온기 사이를 하루에도 몇 번씩 느낀다.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할 때마다, 원래 알던 세계로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방향이 되어주는 건 팀원들과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며 자신의 생계를 내건 동료들이다. 내 편인 팀원들, 그리고 동지가 된 1,000명의 조합원 덕분에 두 사람은 지지 않고, 지치지 않고 싸우고 있다.

다시 돌아가다

별내 지점 갑질과 두 팀장의 부당해고에 대한 글을 모두 쓰고 두 팀장에게 보내려는데 투쟁 마무리 소식이 들렸다. 노조 집행부와 지회장은 두 명 팀장의 부당징계 철회와 원직복직를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두 팀장은 주재점 팀장으로 팀원들과 함께 복귀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길 줄만 알았던 투쟁이, 불가능할 줄 알았던 투쟁이 마무리되자 두 사람은 '실감이 안'났다.

복직 이틀 전만 해도 두 사람은 63빌딩 안에 있는 화장실을 쓸 수 없었다. 두 사람뿐 아니라 주황색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조합원들은 보안팀 직원이 '나가'라며 출입을 막았다. 시위를 하다가도 주황색 조끼를 벗기만 하면 화장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3개월을 싸웠다. 실무교섭이 있기 일주일 전부터는 조끼를 입지 않아도 조합원과 연대자들은 화장실을 쓸 수 없었다. 김태은 지회장과 팀장, 그리고 팀원들은 코웃음밖에 나지 않는 본사의 '정책'에 기가 막혔지만 본사가 막는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건 없었다. 건물 앞에서 '평화롭게' 피켓을 들고 발언을 하던 시위자들은 63빌딩 안으로 들어가는 출입문 네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항의했다. 항의는 기자회견으로도 이어졌다. 노동조합에서 부당해고를 규탄하고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몇몇 언론에 보도되었다. 노동조합의 항의 시위와 기자회견, 언론 보도에 계속 교섭을 회피하던 사측은 결국 11월 30일 실무교섭 자리에 나왔다.

실무교섭이 끝나고 63빌딩 앞에서 3개월 간 진행한 시위를 마무리하며 현수막을 걷어내고 사진을 찍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투쟁으로 얻어낸 승리라는 걸 사진 속 조합원들은 안다. 다른 이가 든 피켓 속 문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투쟁의 언어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복직의 기쁨도 컸지만 연대하는 마음의 힘이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기자회견이 있던 첫 번째 사진 속 표정과 달리 눈꼬리가 얇아지고 광대가 올라가 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웃고 있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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