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정 기록
2024.10.21

1편에 이어

A학교 사건을 알기 위해, 학내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탐독했다. 2020년 교육청에서 배포한 내용이었다. 대상 유형별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대응 절차가 담겨 있었는데, A학교의 경우, 학생[피해자]-학생[가해자] 유형이다. 사안 처리 절차를 도식적으로 정리하면 이러하다.

사건 인지 및 상담 -> 가해 및 피해 사실 확인 -> 사안 접수 및 학교장 보고 -> 교육(지원)청 보고 -> 수사 기간 신고 및 지원 기관 연계 -> 보호자 통보 -> (필요시) 피해학생 응급·긴급 조치 -> 관련 학생 분리 및 가해 학생 긴급 조치 -> 2차 피해 방지 ...

2차 피해 방지. 이 부분에서 멈춘다. 교육청 매뉴얼은 몇 번이나 반복해 ‘2차 피해 방지’에 대해 말했다. 2차 가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피해자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게 하도록 강조한다.

상담 시, “2차 피해 예방을 위해 관련 학생의 상담 사실과 내용이 주위에 알려지지 않도록 유의합니다.”
사실 확인 시, “사안을 인지한 교원은 사안에 대한 비밀 유지를 엄수하며” “목격자 및 관련자들에게도 비밀유지 서약서를 작성하도록 하여 2차 피해 예방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안전·긴급조치 시, “피해 사실과 피해자 신원이 다른 학생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학내 성폭력 사안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22조는 비밀누설금지 조항을 위반한 자에게 법적 처벌을 가한다고 적시했다. 그러나 내가 법안 내용을 찾기 위해 살펴본 사이트에는 22조를 설명하는 글 아래 이런 말을 덧붙여 있었다.

“당연하지만 학교폭력 피해자나 신고자 보호는 절대로 안 지켜진다.” *

‘절대로’에 강조까지 해두었다. 이게 현실인가 싶다. 그렇지만 ‘학교’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현실’이라고 치부해도 좋을 곳인가. 우리가 모두 저 공간에서 배우고, 자라고, 만들어져 가는데.

교육부,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사안처리 대응 매뉴얼 (2020.9)

제보자의 존재가 드러나고

A학교도 학교폭력(학폭) 신고 직후, 피해 진술을 한 학생의 존재가 알려졌다. 사건 제보자의 이름이 유출된 것이다.

다시금 지혜복 교사가 사건을 접수한 후 벌어진 일을 따라가 보자. 1편에서 말한 대로, 지혜복이 전해준 사건의 경과를 조금은 자세히 적을 것이다. 지루함을 감수하고서라도 학교에서 학내 성폭력 사건이 실제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보기 위해서다.

“매일 회의를 했어요. 심각한 몇 건은 학폭으로 처리하고, 작은 사안들은 학생들의 교육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방향으로 논의를 했어요. 중요한 건 아이들이 왜 그런 말과 행동이 문제인지를 깨닫게 하는 거니까. 이후에 좀 더 나서서 제보를 할 수 있는 아이들 몇 명을 찾았어요 이 학생들이 진술서를 쓴 거죠. 지목한 가해자가 8명이었어요. 그 8명이 학폭으로 신고가 된 거예요. 사건이 접수되면, 48시간 안에 교육청에 신고해야 해요. 아이들 진술서랑 학부모 동의서랑 받았고 그중 3명에게 분리조치 요구를 했어요.”

여기까진 매뉴얼과 흡사하다.

“다음 날 생활지도부장이 가해 학생들을 상담했어요. 그날 바로 피해 학생의 존재가 드러난 거예요.”

조사 과정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한다면서 피해 진술한 학생의 이름을 언급한 것이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는가 하면, 저한테 사건을 상담했던 아이들이 그날도 학원 가기 전에 떡볶이를 먹고 가겠다고 해서, 그러면 '선생님은 나갈 수 없으니 너희들이 사 와라' 그렇게 아이들을 보냈어요. 그 애들을 떡볶이를 사서 오는데, 학교 앞에 공원이 있어요. 그 공원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이랑 친구들이 얘네를 부른 거예요. 내 이름 쓴 애가 000이라더라, 가만 안 둔다, 이러면서 쌍욕을 하더래요. 이 여학생들이 놀래서 저한테 뛰어와서 '어떻게 생활지도부장 샘이 피해 학생 이름을 말할 수 있냐'고. 순간 이 아이들의 반응이, 나도 못 믿는 거예요. 떡볶이도 안 먹고 그냥 가버리더라고요. 자기들 이름까지 다 밝혀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든 거죠.”

2차 가해의 시작

“다음날 학교가 아침부터 난리가 난 거예요. 가해 학생과 그 친구들까지 쉬는 시간마다 몰려 다니면서 신고한 애들이 있는 반에 가서 소리 지르고 조롱하고 ‘이것도 성희롱이라고 신고해라’ 이러고. 인스타그램엔 저격 글이 올라오고. 그날은 쉬는 시간마다 여학생들이 저를 찾아왔어요. 너무 무섭다고. 그래서 제가 교장 선생님한테 찾아갔죠. 2차 가해를 멈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전문가를 불러서 교육해야 한다. 그날은 교장도 긴장했는지, 전문가를 알아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놓고 나중에 말을 뒤집었어요.”

전문가 교육은 취소됐다. 이유는 듣지 못했다.

“굉장히 심했을 때는 교장선생님이 교실마다 들어가서 이야기했고, 제일 심하게 행동하는 아이들이 있는 반에는 제가 들어가서 설명을 했어요. ‘이런 행동은 정말 해서는 안 된다. 부탁한다.’ 학급마다 들어가진 못했어요. 들어가려면 담임과 교과 선생님들에게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라서. 한 선생님이 허락을 해줘서 들어갔던 거죠.”

괴롭힘 대상은 피해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지혜복 교사도 ‘저격’의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왔다. 2차 가해 행위가 살짝 잠잠해지는 순간을 노려, 학교가 내놓은 대안이 있었다. 시험이 끝나자 ‘명랑 운동회’가 열린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친하게’ 지내기 위한 화합의 장이라 했다.

“명랑 운동회를 열어서, 체육관에 다 모아놓고 성차별적인 발언을 아무렇게나 내뱉는 연예인 사회자를 불러서 무대에 세우고 운동회를 했어요. 여학생들은 저를 찾아와 하소연하고. 답답해서 행사 끝나기 전에 가봤어요. 체육관에 들어서니까 남학생들이 저를 보더니 ‘으싸으싸’ 기합을 넣고, 세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이걸 지금 수습 대책이라고 내놓은 거라니.”

교육청 매뉴얼에는 없는 ‘기발한’ 대책이다. ‘화합의 장’이라고 제시했다만, 운동회는 화합의 장이 될 수 있었을까.

남자들의 놀이

대학마저 여자대학을 나온 나에게 ‘체육’은 당연히 여자들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일이었다. ‘체육’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운동장에서 훈련하던 운동부 여자아이들이나 체육관에서 들려오는 새된 기합 소리가 떠올랐다. 많은 이가 나와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 남녀공학을 나온 여성들은 체육 시간을 남자들이 뛰노는 장면으로 기억했다. 이들에게 운동장은 ‘남성(학생)’의 공간이었다.

운동장을 점유해본 경험도 없고, 비명에 가까운 기합을 넣으며 뛰어 다녀본 기억도 없다. 오히려 체육 시간은 곤혹일 경우가 많았다. 달리고 던지고 몸을 움직이느라 체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것이 교사나 남학생들에게 품평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고 했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들에게 풋살 열풍이 분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공간을 점유하고 자유롭게 뛰노는 경험을 되찾고자 하는 게다. 지금이라도, 그리고 이제 스스로 “모두에게 열린 운동장”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러니 명랑 운동회는 미봉책이라고 말하기도 부족하다. 학교에서 여자 학생들이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대책이다. “모두의 학교”가 아니다. 이를 인지하고, 해결하려는 학교 구성원도 몹시 적다. 지금의 학교가 어떻게 젠더 폭력의 공간으로 변했는지를 설명해주는 조각이다.

게다가 다수의 가해 학생이 운동부 소속인 학교에서 주최하는 명랑 운동회는 어떤 메시지를 주었을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학교가 주도한 또 하나의 가해 행위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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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에서 해결할 수 없겠다

“2차 가해가 너무 심하니까, 피해 학생들이 상담하러 안 가는 거죠. 학생들은 저에게 와서 우리가 무슨 잘못을 한 사람처럼 생활지도부에 불려 가냐고. 그랬는데 생활지도부장이 수업 시간에 학생들 반에 찾아와 피해 학생들을 하나하나 부르더래요. 다른 학생들도 다 보는 앞에서. 심각한 신원 노출이죠.”

매뉴얼 책자는 ‘피해자 보호’를 끝없이 언급하는데, 현실에선 피해자 신원 유출이 끝없이 반복된다. 이게 현실이니까. 그런데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기에 처벌 조항도 있는 거다. 재발 방지를 위해 책임을 물리는 행위다. 그러나 피해 학생 신원 유출을 한 교사는 어떤 징계나 처벌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에선 지혜복이 신원 유출을 한 거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렇게 말이 섞이면, 누가 그랬는지 책임의 소지가 불분명해진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어지고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리하여 학교라는 곳을 졸업한 학생들은 이런 글을 온라인 공간에서 적는다. “당연하지만 학교폭력 피해자나 신고자 보호는 절대로 안 지켜진다.”

그들의 내면에 새겨지는 것은 세상을 향한 불신이겠다. 그러니 왜 우리가 학교를 가야 할까. 그러나 이 질문을 끝으로 글을 접지 않는 건, 지혜복 교사의 다음 행보 때문이다.

“진짜 심각한 인권 침해가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민원을 넣었어요.”

2023년 7월 11일, 지혜복은 서울시교육청에 민원을 제출한다.

“민원 내용은 이러했어요. 직무를 방기하고 피해자 신상을 유출한 교감과 생활지도부장을 징계하라. 시급히 학교에 성폭력 예방 교육 프로그램이 들어와야 한다. 그리고 피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회복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한다.”

주민센터나 구청 홈페이지에 온라인으로 접수하는 그런 민원이 아니다.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의 성폭력 사안 처리 과정이 어긋남을 고발하고, 교감을 포함한 사건 담당자들에게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달라는 민원이다. 민원을 넣을 때 어떤 마음이었냐고 물었다.

“이 문제가 더는 학교 내부에서 해결될 수 없겠다는 판단을 했어요."

A학교가 사건을 무겁게 보지 않고, 사건의 심각성을 축소하려 하고, 공정하게 사건을 해결하고 자정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내가 물은 것은 그의 안위였다. 학교는 민주적인 공간이 아니다. 위계와 권위가 존재하고 의사소통과 참여가 동등한 위치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학교가 그런 속성을 지닌 일터라는 건 굳이 긴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러한 조직에서 ‘내부’ 문제를 ‘외부’로 알리는 사람이 어떤 취급을 받을지 눈에 선했다. 내 쪽에선 1년이나 뒤늦은 염려를 한 것인데, 지혜복은 사건을 해결할 방법에 대해 말한다. 그래, 사건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3편에 이어)

* 출처(나무위키)

학교 안에서 다른 세상을 꿈꾸는 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