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지도-지지도-않을-군산의-싸움
_ 평화는 바람처럼 분다고 믿는 ‘오이’의 이야기   2023년 11월 누리(싸우는여자들기록팀) 기록 이 글은 '얼룩소'에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    군산에서 부는 평화바람   1997년, 군산에 주둔하는 주한미군이 기지의 활주로 사용료 다섯 배 인상을 요구한다. 활주로를 빌려 쓰는 군산공항이 비상을 맞고, 즉시 시민들이 모여 항의에 나선다. 미군은 한국 땅에 무상으로 기지를 꾸리는데, 한국을 나는 민항기가 미군에게 값을 치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반대 운동이 일어난다. 결국 사용료를 동결하고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이듬해에는 미군기지가 일으키는 갖가지 문제와 싸우는 ‘군산미군기지우리땅찾기시민모임’이 결성된다.    ​ ▲ 평화바람과 함께 전국을 유랑했던 꽃마차. 십 년이 넘는 오랜 여정을 마치고 이제는 군산평화박물관의 얼굴이 되었다.  (출처: 누리)   2003년부터 군산과 매향리, 대추리, 강정 등 주한미군의 영향권에 있는 지역들을 오가며 평화 운동을 펼친 ‘평화바람’도 그 자발적인 시민운동에서 생겨난다. 올해 여름 만난 ‘오이’는 2013년부터 평화바람에서 활동하며 고향 아닌 군산에서 어느덧 십 년째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인터뷰가 군산의 모든 싸움을 대변하고 대표할 수는 없다고 당부해왔다. 자신은 그저 자기 자리에서, 당시 파행을 거듭하고 있던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를 둘러싼 ‘새만금 신공항’ 문제를 널리 알리고 싶어 나왔다고 했다. 다만, 여기까지 읽은 누군가는 의아할 수 있다. 군산 미군기지와 잼버리와 새만금 신공항의 뜻 모를 상관관계에 대해. 당장 군산이 있는 전라북도 출신인 나부터도 올해 들어서야 그것들을 같이 생각할 수 있게 되
같이-사는-것도-투쟁이-될-수-있나요?
_ '함께 살기' 위해 투쟁한 여성의 이야기 2023년 11월 태린(싸우는여자들기록팀) 기록 이 글은 '얼룩소'에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살고 싶은 동네가 있다는 것  스무 살, 태어나 줄곧 살던 지역을 떠나 혼자 서울로 이주했다. 그토록 떠나고 싶던 고향이었는데도, 서울살이는 외로웠다. 마음을 둘 공간이 없었던 탓이다. 복잡한 지하철과 낯선 지명에 익숙해지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빨래건조대와 나란히 누우면 꽉 차던 첫 자취방도, 통금에 쫓기던 학교 기숙사도, 임대료에 쫓겨 변두리에 얻었던 그다음 자취방도, ‘집'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학교, 일터만 오갔으니, 동네에 대한 애정이 생길 틈도 없었다. 매년 이어지는 이사가 지겨워질 때쯤,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스쳐 가는 지역이 있었다. 언젠가 홍대 앞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활동하며 알게 된 많은 이들이 이미 마포에 살고 있었다. 이유도 다양했다. 마포에 있는 학교에 다니게 되어서, 마음 맞는 친구들이 있어서, 비건 식당이 많아서, 사회운동 단체가 많아서, 퀴어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살 수 있어서… 다양했다. 공통점이 있다면, 다수가 마포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여러 번의 이사를 거쳐 마포로 오게 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마침 살던 집 계약이 끝나는 시기에 완공되는 공동체 주택이 있다고 했다. 누군가는 대출받는 방법을, 또 다른 이는 입주하는 방법을 알려 줬다. 이주하는 과정부터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마포구 성산동에서, 처음으로 ‘내가 선택한'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2년 전의 일이다. 동시에 궁금증도 생겼다. 단순히 “내가 사는 동네 정말 좋아!”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른 이가 동
햇볕이-좋아서-경리노동자,-허진희-씨
_우리 단 두 명이지만 노동조합도 하고 파업도 합니다. 2023년 10월 시야 기록 이 글은 '얼룩소'에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서면시장 상인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한 게 죄가 되나요? ​   서면시장은 부산의 중심가에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건물에 볼품없는 상가라도 서울 명동 시장을 능가하는 땅값이라고 들었다. “서면시장 땅값이 한 평당 공시지가가 8,000만 원을 넘어선” 지는 한참 지났다. 부산 진구에 위치한 서면시장은 1960년대 초 상인들이 부산시에 보증금을 내고 임시 건물을 지어 장사를 시작했다. 그 후 임시 건물을 철거하고 현재의 4층 건물을 지어 시장을 개설하였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1972년에 시장상인들의 모임은 사단법인 서면시장번영회를 설립하였다. 번영회는 점포를 소유한 상인들 즉 점포주를 회원으로 한다. 점포주 90%가 점포를 임대하고 떠나있어 대다수가 임대 상인이지만 임대 상인은 임대료와 관리 세를 낼 의무가 있을 뿐이다. 번영회는 점포주가 선출한 회장과 부회장인 회장단과 상가건물 각 층마다 이사를 선출해서 법인 이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한다.   허진희 씨가 사단법인 서면 시장번영회로 입사한 건 2015년 6월이었다. 20대부터 줄곧 사무직 경리업무를 했었다. 나이가 어릴 때는 친구 따라 화려한 쇼핑몰에서 잠깐이지만 옷 장사도 해봤다. 재미있지만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은 힘들었다.   “나는 햇볕이 있을 때가 좋구나”   그는 9시에 출근해서 낮에 햇살을 받으면서 일하는 게 좋았다. ​ ▲ 허진희 씨의 모습 (출처: 이인우사진가) ​ 번영회 사무실은 서면시장의 관리사무소나 다름없다. 허진희 씨가 맡게 될 회계, 경리업무는 230여 개의 상가를 찾아다니면서 관리비와 재산세를 수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