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크레인 앞, 다윗들에 대한 이야기
서진 1000일 투쟁 기념 늦은 모꼬지 후기
2023. 3. 두번째 모꼬지
고태은 기록
3월에는 싸람이 두 번이나 모꼬지를 다녀왔다. 찬 공기가 여전한데, 더 추운 곳에 있는 사람들. 그렇지만 마음은 너무 뜨거운 사람들을 만나러 미르, 시야와 함께 울산으로 달려갔다. 현대중공업의 건설산업기계라는 그들의 일터가 있는 곳. 그리고 그들의 삶과 투쟁이 있는 곳으로 가며, 나는 서진ENG의 동지들을 떠올렸다.

내가 서진ENG동지들을 알게 된 것은, 고작 1년 전이었다. 눈을 돌리면 어느 곳에서나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이었다. 항상 먼 길을 달려, 함께 연대하는 이들이라서, 나는 언제나 그들을 볼 수 있었고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 서진 동지들과 함께 ‘비정규직이제그만1100만비정규직공동투쟁’에서 함께 할 때, 동지들이 진심으로 비정규직 철폐를 위하여 비정규직노동자로서 열심히 싸운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다른 작은 사업장들의 연대 과정에서도, 자신의 일처럼 분개하고, 공감하고, 아파하는 것을 보며 혼자 감동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런 팬심(?)이 이번 모꼬지의 동기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다른 하나는, 항상 그들을 ‘맞이하는’ 나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그들이 연대오는 현장에서 만나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시간이 쌓여 이 사람들을 아주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들의 투쟁을 잘 모르는구나 생각할 때가 많았다. 현대라는 거대자본, 현대중공업 안에서도 조선소가 아닌 건설기계 소속의. 그것도 하청지회에 소속된 서진ENG 해고자들의 투쟁은 어떤 모습일지가 궁금했다. 그런 마음으로 그들은 자주 오르내렸을 먼 길을, 낯설게 달려갔다. 더 이전이었다면 설레어하며 내려갔겠지만, 그 전날 현대중공업 경비에 의해 다친 동지들을 생각하며 싱숭생숭한 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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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에 방문했던 3월 24일에는 고 신명철 노동자 산재 인정 투쟁이 한창이었다.
하청 노동자였던 그의 죽음에 사과하라 요구하다, 그 전날 이병락 부지회장은 경비대에 폭행당해 허리를 다쳤다. 



맨 처음 우리가 만난 곳은 공장 앞이었다. 2주 전 발생한 ‘산업재해사망 노동자 고 신명철 님’의 유가족과 함께 하는 선전전이었다. 신명철 님도 생전에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였다. 우리는 선전 내용을 들으며 퇴근선전전에 참여했다. 3월 9일, 내 생일에 누군가 별이되었다는 생각에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온 힘을 다해 함께 싸우는 서진 동지들의 모습에 또 마음이 울컥했다. 그 전날 경비들에게 맞아 허리를 다친 이병락 부지회장님의 걸음이 내내 눈길에 밟혔다.

퇴근선전전 후 드디어 하청지회 사무실에서 서진ENG 투쟁 이야기를 듣게 됐다. 서진ENG는 현대중공업 건설기계를 원청으로 하는, 하청업체다. 회사에는 10년을 전후하는 베테랑 노동자들이 많았지만 하청업체의 노동조건이란 게 열악하다보니 업체를 바꿔가며, 이직을 해가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점점 늘었다. 처음 노동조합을 만들 때, 이들은 “우리 손으로 평생 만들 직장을 만들어보자”며 마음을 모았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세우고 회사를 떠나지 않고 바꾸겠다 마음먹자 회사가 문을 닫아버렸다. 졸지에 해고자가 된 동지들의 마음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래도 해고자 27명은 포기하지 않고, 함께 투쟁을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해고자들은 사내하청지회 소속으로, 생계조 21명, 투쟁조 5명으로 남아 여전히 투쟁하고 있다. 서진ENG는 문을 닫았지만, 아주 닫지 못하고, 불법파견 소송으로 노동자들의 손에 잡혀있는 상태다. 아직 1심 진행중인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에서 서진ENG 사례는 아주 전형적인 불법파견이라며, 생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빠른 시일 판결을 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해고된 노동자들의 투쟁은 마냥 사법부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생계조의 동지들과도 함께 투쟁을 해쳐나가야 하는 투쟁조의 고민은 더 깊다. 대기업 소속 하청지회 소속의 해고노동자로서의 설움도 크지 않았을까. 그런 상황에서 서진ENG 해고 노동자들은 상경투쟁도, 고공투쟁도 안한 것 없이 다 해본 사람들이었다. 제일 놀라웠던 것은, 이들이 노조를 만들자마자 해고가 되어 벌써 3년이 됐다는 얘기였다. 농담삼아 ‘본투비(born to be, 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난) 노조맨들’ 아니냐고 농담할 정도로 비정규직 투쟁에 진심이고, 노동조합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해고 전에는 노조 없는 하청업체 노동자였다는 것이, 그리고 3년의 시간이 이들을 이렇게 변화시켰다는 것이 놀라웠다. 놀랍다기보다는, 좀 감동스러웠다.

그들에게 연대의 의미에 대해서도 물었다. 대체 연대가 무엇이길래 우리는 항상 그 수많은 곳에서 만났던 것인지.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그렇지만 내가 묻기도 전에, 이심전심 시야님이 먼저 물어봤다). 평소에 말 없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시던 김용만, 박찬영 두 동지께 질문을 했는데, 두분 다 ‘소탕단(금속노조 불법파견 손배가압류 소탕단)’ 활동 경험을 이야기했다. 연대의 시간동안 서진동지들이 본 것은 자원도, 사람도 적은 말 그대로 ‘작은’ 투쟁들의 힘과 승리였다. 연대를 하며, 그런 작은 싸움들이 지면 안되겠다, 끊기면 안된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리고 연대했던 투쟁들이 이기는 경험이 ‘정말 이길 수 있구나’를 느끼게 했던 순간들도. 그 순간 진심으로 함께 투쟁했던 연대동지들인 서진 동지들의 입으로 듣는 신라대 청소노동자 투쟁 승리나 울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동지들의 승리 소식은 그 벅참이 전이되어 짜릿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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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고 알찬 간담회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 싸람 모꼬지 비공식멤버 지엠비지회 김경학)

간담회 시간이 너무 찰나처럼 흘렀다(사실, 실제로 짧기도 했다). 돌아가는 길 시야님의 차 창밖으로 언 듯 골리앗 크레인이 보였다. 거제에서도, 울산에서도 골리앗 크레인의 거대함은 내게 낯선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울산에 올 때마다 나는 저 큰 골리앗 크레인을 소유한 거대자본 앞에, 다윗처럼 서서 싸우는 서진ENG 노동자들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다윗이 손에 쥐어진 작은 돌맹이로 골리앗이라는 전형적인 강자를 쓰러뜨렸듯이, 자본주의와 비정규직, 하청 그리고 산재까지 산적한 세계에 균열을 내는, 연대와 투쟁의 힘을 쥔 다윗들을, 나는 엿본 것 같았다. 서진ENG 해고 노동자들을 좀 더 알게 되어 기뻤다. 돌아오는 길 나는 더 큰 팬심을 가지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

4월 25일은 서진노동자들의 천막농성 1000일이다. 그리고 그 날을 기념해 문화제가 열린다고 한다. 나는 또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를 타고, 그들의 투쟁을 듣고 함께하러 갈 것이다. 작고 강한 투사들의 싸움을 보고, 연대가 나누면 나눌수록, 깊고 진하고 많아진다는 것을 확인하러. 함께 확인하고 싶다면, 꼭 같이 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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