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에 공업단지에 약 20년 전 사건이 있었다. 분신자살.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열사는 회사 내 노동자 광장에서 몸에 불을 질렀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회사로 받은 손배(손해배상청구)의 부당함을 온몸으로 알리려 한 것이다. 회사에서 가압류가 떨어진지 수개월, 그의 마지막 월급통장에는 2만 5천원이 찍혀있었다. 정당한 권리를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을 옥죄는 손배의 갑갑함을 알리면서 사회적으로 충격을 주었지만 여전히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 앞에 자본가들이 내미는 손배 청구는 잔인하기만 하다.
2022년 초에 있었던 ‘서울쇼트 공업’(강주물 주조업, 50인 미만 기업, 주강쇼트, 그리트 제조, 도매/철강구조물공사, 제관공사, 대표자 스테판조셉바르질라이)이라는 곳에서 한 번 더 거액의 손배 청구가, 어이없는 이유로 손배 청구가 있었다. 손배 금액은 총 8240만원, 이유는 ‘점심시간 1시간 동안 노동가요를 틀어 집시법에서 점한 소음 기준을 초과하여 직원들의 행복권 중 하나인 휴식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투쟁하고 있는 '서울 쇼트 공업' 을 알게되었다.

투쟁이 한창이던 2022년 초에 설한록 위원장을 만났다.
서울 쇼트 조합원들은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투쟁 과정을 안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2022년 3월 8일에 합의했다.
노동조합을 다시 세우고 싸우기 전에도 노동조합이 존재했다. 그러나 유명무실한 상태였다. 현장의 노동조건과 환경은 점점 열악해져가는데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였다. 2004년 이전에는 민주노총 소속이었던 노동조합이 기업노조로 바뀌면서 2021년까지 이어져왔다. 서울쇼트 노동자들이 '노조'가 민주노총 소속일 때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노동조합을 제대로 운영해보려고 폐허가 된 사무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연찮게 확인한 거에요. 회사가 철저하게 지운 거 같아요. 그래서 아직도 그 이전에 지회의 투쟁 역사가 있었는지 알지를 못해요.”
설한록 위원장의 말이다. 노조 활동이 뜸할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 금속노조 탈퇴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탈퇴반대를 했던 천막 농성했던 사람이 없어지면서 노조가 힘을 잃었던 것이었다. 이것도 장기근속한 친구한테 물어보고 간신히 알게된 사실이다. 기업 노조로 바뀌고 나니 임단협 할 때가 되면 사측이 먼저 ‘몇 프로 입니다’하고 준비를 해왔다. 노측이 ‘그렇습니까’하고 인사하고 사인하고 오는 그런 식이었다고 한다. 노사협의회도 있었는데 형식적이었다. 그냥 사측이랑 저녁먹고 서명하는 정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게 참 놀라웠다고 위원장은 말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위원장이 바뀌는 시점에 노조 위원장에 직접 도전했다고 한다. 사무장이 너무 안뽑혀서 내가 다 할테니 한번만 같이하자고 사정을 해서 모양새를 갖춰서 시작을 했다. 집행부도 만들었다. 그러고 제일 먼저 했던 일은 근로기준법과 단체협약 위반 사항들을 공문으로 작성해서 회사에 보내는 것이었다. 회사는 격렬하게 반응했다. 탄압의 시작이었다. 사람을 집요하게 괴롭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고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회사랑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서 노동조합을 제대로 해보려고 했던 건데 막막하더라고요. 그래도 생각했던 게 내가 여기서 물러나면 안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서울쇼트는 블랙스톤이 최대 주주고 외국계 기업이에요. 여기 앉은 사장은 바지사장이라 그러죠? 월급쟁이 사장.”
이 사장이 출근해서 하는 일을 살펴봤다고 했다.
“사장에 아침에 출근을 하면요, 커피 한 잔 들고 씨씨티비 보고 현장 살펴보고 부서 사람들 감시하는 걸로 시작해요. 근데 그거 불법이라고 문제제기 했어요. 또 현장 순회를 하면서 여기저기 지적하고 다녀요. 소리 지르고 싸우면서 못들어오게 했어요. 그런 과정들이 있었어요.”
현장에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노사협의 안건을 주고받는 자리가 있었다. 그런데 번번히 부딪혔다. 근기법과 단협을 어긴 사항을 시정조치하라고 공문을 보내면 노사협의회에서는 실제 권한을 가질만한 사람이 들어오지 않았다. 돌아오는 답은 ‘나중에 물어보겠다’ 였다. 이렇게 마무리를 했다. 이렇게까지 노조를 무시하나 싶어서 사무장이랑 더 자주 만나면서 상의를 했는데 그걸 보고 회사에서 위원장과 사무장의 근무조를 바꿔버렸다.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
이게 기업별 노조의 한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과 노조가 상대하기에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수직적인 관계를 바꿀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한 사업장의 힘을 넘어서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상급단체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총회를 결성했다. 총회에서 위원장은 확실하게 말했다. 기업노조보다는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두고 우리 사업장의 문제를 싸워야 훨씬 힘이 있을거라고. 그럼에도 부결이 났다. ‘회사는 (민주노총) 할 수 있겠냐?’라면서 비웃고 지나갔다. 현장에서 오랫동안 싸워보지 않은 노동자들의 패배감을 주목했던거 같다고 위원장은 말했다.
“제대로 해보자고 해도 조합원들 사이에 패배감이 심하게 있었어요. 해도 안된다는 패배감. 회사도 이걸 아니까 민주노총에 가입 못할거라고, 가입해도 어쩌라고 식이었어요.”
현수막걸린 민주노총 무료 상담 번호를 보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상담을 받고 다시 조직개편 총회를 열어 결국 가결시켰다. 회사는 절대 안될거라고 생각하고 총회 성사 방해조차 하지 않았다.
“노사 관련 사안을 설명하는데 재무재표 보여주고 회사 이익 공개하고 우리가 얼마나 월급을 뺏겨왔는지 알려주니까 조합원들이 뒤집어진거죠. 특히 상여금 600%를 싸그리 날리는 과정을 설명하니까 다들 뒷통수 맞은거처럼 놀래서 결국 민주노총 소속으로 개편이 되었어요. 그래서 마창지역 금속지회 소속이 되었어요. 우리는 소규모 인원이라서 작은 사업장 4개 정도를 묶어서 우리가 거기 속하게 된거죠. 우리가 가입하면서 100명정도가 되었어요.”
회사가 많이 놀랬다. 그래서 노무사를 선임했다. 회사는 협상을 계속 끌었고 노조는 쟁의권을 얻고 본격적으로 투쟁을 시작했다. 피켓도 만들고 선전전 준비도 하고 현수막도 붙이고. 문화제도 열어서 신명나게 했다. 여담으로 그 선전전이 보기 싫어서 사장 출근시간이 바뀌었다고 했다. 선전전을 시작하자마자 손배가 날라왔다.
“가처분 걸고, 손배 청구했어요. 가처분이 설한록 본인(위원장), 서울 쇼트 노동조합, 경남지부, 위원장이랑 지부장을 상대로 가처분을 신청하고 손해배상을 신청했더라고요. 그때쯤에 배달호 열사 추모제가 있었어요. 8천240만원 금액이었는데 전체를 건드리면 안되겠다 싶었는지 위원장 말고는 전부다 취소했어요. 저(개인)만 형사고소했고요. 형사 고소에는 불법점거, 노래튼거, 천막친거, 환경안전, 무단침입, 기자회견에서 허위사실유포, 위계 위반 하는 부분.. 말도 안되는 걸로 해놨어요. 조사도 받게되었는데, 솔직히 겁이 안난건 아니었지만 어이도 없었어요. 그래도 민주노총에 법률원이라하는게 있어요. 거기서 위임을 해서 다 해줬어요. 살다가 재판도 갔어요. 전자재판. 근데 또 별거 없이 대답 몇 번하고 끝이 났어요. 당연히 승소했고요.”
결국 33차까지 진행해서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회사는 그 직전까지 잔인한 짓을 했다. 임단협 직전에 회사가 형사민사 고소장들을 죄다 집으로 보내서 그걸 조합원 집에서 다 알게되었다.
“내 이름이 특이하잖아요. 검색하면 내용이 주르륵 나오는거죠. 그러고 스트레스 받고 응급실에 실려갔어요. 혈관 조형술하고 나한테 그만두라고 하더라고요.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아내한테 법률상담까지 해줬어요. 그래도 불안했나봐요. 그만두라고 사정을 하더라고요.”
먼저 전화해서 만나자고 했다. 일단 민사 손배 합의를 봤다. 합의를 보면서 느낀건 바지 사장이라고 할 수 있는게 없다고 하더니만 정작 소송에 있어서 본인이 합의를 해주겠다고 하는걸 보니 직접 지시했다는 증거가 아니겠나 생각했다고 한다. 그동안 사장은 본인 입지가 좁아졌다고 죽는 소리를 했다. 이후 형사 소송 합의까지 완전히 마무리 지었다. 결국 처음 제시안보다 대폭 후퇴해서 합의를 했다.
“그래도 시급 370원, 인상 타결 격려금 180만원, 노조 전임자 600시간 타임오프를 따냈으니 만족해야죠.”
아쉬움은 없지 않다. 그래도 투쟁하는 동안 이탈자 없이 버텨왔다. 그래도 현장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지쳐있고 패배감에 젖어서 축축한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이 가장 큰 성과이다. 고개도 똑바로 들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말을 삼키지 않는다.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사람들도 이제 반대하지 않는다. 자신감이 생긴거라 생각한다. 이제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후임 육성을 해야하는데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현장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잘 해나갈거라 위원장은 말한다.
창원의 산업단지 앞의 장미공원에서 설한록 현장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한 인터뷰는 이렇게 담백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다시 일을하러 가야한다고 집에서 밥먹고 가야한다면서 훌훌 털고 일어났다. 굴곡진 투쟁의 과정을 어떻게 이야기로 다 설명할 수 있었을까.
작지만 단단한 바람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현장을 휩쓸고 갔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싹이 자랄지도 모르는 바람이.